늦잠잤다. 아주 제대로 늦잠을 잤다. 알람을 끄고 버릇처럼 다시 잠들어버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홉시 반. 주중에는 아홉시까지만 제공되는 호텔 아침식사를 놓쳤다. 그렇지 않아도 변변치 못하게 먹으면서 여행하는데 그나마 가장 잘 챙겨먹을 수 있는, 그것도 무료로 (물론 내가 낸 호텔비에 들어있겠지만) 제공되는 밥을 놓치다니. 아직 덜 굶었구나... 아쉬운 마음은 일단 접어두고,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부지런히 체크아웃을 했다. 다행히 자기 전에 짐을 모두 싸두어서 나오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밸리오브파이어의 구경거리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Elephant Rock이다. 코끼리 바위. 과연! 부족한 상상력을 억지로 긁어모을 필요도 없이 코끼리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구나! 높은 언덕을 힘겹게 오르고 있는, 코끼리보다는 영화에서 보는 고대의 맘모스 같은 형상이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자연의 조각품'이라는 말이 이런데선 정말 어울리는 듯하다.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북쪽 끝에 있는 Stratosphere 호텔이 마지막 라스베가스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스트립에 있는 대형 호텔 중 가장 오래 된 것 중의 하나이지만, 타워 끝에 있는 놀이기구가 유명하다고 한다. 자이로드롭 같이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놀이기구가 있는데, 일단 타자마자 타워 꼭대기에서 시작하니 기분이 쌍꼼하겠지. 그리고 타워 밖으로 뻗어 뱅뱅 도는 놀이기구도 있다는데, 타 본 동생 말로는 '죽음'이라고 한다. 놀이공원 가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고, 무엇보다 혼자 타러 가기도 뭣해서 안 갔다.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는 밸리오브파이어 (Valley of Fire). 무려 '불의 계곡'. 뭔가 고풍스럽다. 아니나다를까, 네바다주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왜 불의 계곡인고 하니, 일대에 있는 붉은 색의 사암(砂岩)들이, 마치 불꽃과 같이 보인다고 해서 그렇다고 한다. 오바쟁이들. 아무려면 돌이 불처럼 보일까. 한시간 좀 넘게 운전해서 드디어 입구에 도착!

오오 멀리서 이미 붉은 기운이 벌써 심상치 않다. 첫날 데스밸리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입장료를 받는데, 자동차 한 대당 $6이다. 나같이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든, 큰 차에 바글바글 타고 있는 그룹이든 자동차 한 대당 $6. 혼자 여행하는데 같은 돈을 내자니 좀 속상했다. 왠지 나만 비싼 돈 주고 내는 것 같아서 (사실이지만).

제 사진에 찬조출연 해주신 아저씨 감사합니다. 어째 아저씨가 더 주인공 같아 보이네요. 사암의 퇴적 층리가 뚜렷하다. 돌이 막 깨져 널부러져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단순한 풍화만으로 이런 형상으로 돌이 늘어설 수 있는건가.

생긴게 벌집같이 생겼다고 해서 Bee Hive라고 이름 붙여진 돌. 정말 좀 말벌집같이 생겼는데? 도대체 어떤 풍화작용이 일어나면 이렇게 생긴 돌 하나가 덜렁 들판에 나타나냐고...
밸리오브파이어가 유명한 이유중의 하나는 다양한 SF영화가 촬영된 탓이다. 아마도 지구의 풍경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풍경 때문이겠지. (요새 재정난에 허덕이시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님 아놀드 스왈제네거님의 영화 '토탈 리콜'에서 화성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여기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유명한 영화로는 '트랜스포머'에서 오토봇들이 군대 차량과 함께 달리는 장면이 여기서 촬영되었다고. (굳이 여기서 찍을 필요는 없는 씬 아냐?) 나도 이날 오토봇 하나가 지구로 오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인디언의 고대 벽화가 남아있는 Atlatl Rock. (모든 고대 벽화가 그렇듯이)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수확이나 사냥이 풍요롭기를 바라는 내용이라고 추측하다고 한다. 여기에 예전에 인디언이 살았었다는 말인데, 이러한 기후에서 도저히 사람이 지속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후가 바뀌기라도 한건가?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여기는 1150년대까지 인근 Moapa Valley에 살던 사람들이 사냥이나 채집, 종교적 의식 등을 위해 찾아다고 한다. 과연... 이런데에 그링을 그린 사람들이나, 이런데서 그림을 발견한 사람들이나...

올라가보니, 과연 벽화가 있었다!

울산 반구대 바위벽화도 못본 내가, 미국 원주민들의 벽화를 먼저 보는구나! 그러나 관광객을 위한 계단이 벽화 바로앞까지 있는 덕에 손만 뻗으면 쉽게 닿을 거리의 벽화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이정도의 벽화라면 국적을 막론하고,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전지구적인 유산이라고 할만 한데, 저렇게까지 아무 의미없이 훼손시키는 심보는 무엇일까. 공원측도, 계단을 벽에서 좀 떨어지게 설치하든지, 벽화를 보호할 수 있는 유리벽같은것을 세우든지 보존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쉬웠다.

다음은 후버댐 (Hoover Dam)!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의 경계에 있는 Lake Mead에서 콜로라도 강 (Colorado River)를 흘려보내는 댐이다. 강의 수위가 일정하지 않아 해빙기에 버람하거나 가물어 말라버리는 일이 잦아 인근 주들이 합의하여 1931년부터 1936년까지의 공사 끝에 완성된 댐이라고 한다. 그 당시 최대의 수력발전댐이었으며, 그 시기의 기념비적 공사라고. 1930년대에 이런 공사를 했다니...

아 이 엄청난 스케일을 보라. 이런 건 잘 찍은 사진 아니면 잘 안보이는 법이지. 트랜스포머 1편에서 나오는 댐이 여기라고 한다. 바람은 또 어찌나 세게 부는지, 댐 위에 서있으면 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쪽 물이 떨어지는 쪽에는 유리로 벽을 만들어두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댐을 건너면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를 건너다닐 수 있다는거다! 네바다주에서 댐을 건너면 애리조나주.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네바다와 애리조나를 가로지르는~

여긴 아마도 애리조나였겠지. 저쪽 산은 네바다주고. 그런데 이 댐으로 지나는 길이 왕복 2차선 길인데 엄청나게 막힌다. 관광객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냥 건너서 애리조나주로 넘어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아마도 여기가 Lake Mead 아래로 지나는 교통로인 모양인데, 너무 막혀서 교통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막히기 시작하는 초입에 있는 호텔 앞에서 'Dam Traffic'이라는 간판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을까.

그래서 이런 큰 다리를 더 만들고 있는 모양이더라. 역시 이렇게 보니까 이게 동네 초등학교 앞 육교인지, 세계에서 35번째로 큰 수력발전소 앞의 다리인지 잘 안보이는데, 한마디로 크다. 두 주를 가르는 댐과 강을 건너는 거대한 다리입니다요. 후버댐을 떠나는 길은, 다시 말하면 애리조나주에서 네바다주로 오는 길은 그닥 막히지 않았다. 이상하게 애리조나주로 가는 방향만 막히더군.
후버댐을 떠나 15번 도로를 타고 LA로 떠났다. 허버댐을 떠나는 것이 예상보다 약 3시간 정도 늦어졌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느낀건데, 몇시간을 예상했든 꼭 한시간씩 늦어지더라. 2시간이면 볼 줄 알았는데 3시간 걸리더니, 6시간이면 다 보고 떠날줄 알았는데 7시간 걸리고. 아침에 늦게 일어난 것까지 해서 3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라스베가스를 떠난지 얼마 안돼서 길이 꽉꽉 막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침 네바다주에서 캘리포니아주를 넘어오기 직전 Primm이라는 곳에 유명한 아울렛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거기 들렀다 출발할 때 쯤이면 좀 풀릴 것을 기대하고.
과연 꽤 큰 아울렛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명품 아울렛도 별로 없어서 그닥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는데, American Eagle, G by Guess 등등 캐주얼 브랜드의 대형 매장이 많이 있어서 참 좋았다. 물론 Burberry, Coach, Bally 등 고가 브랜드도 있는데, 매장이 캐주얼 브랜드보다는 작은 편이었다. Banana Republic 같은 것도 있고. 가격은 괜찮았다. 물론 정가를 받는 것도 있었지만, 할인 품목도 많은데다, 괜찮은 이벤트를 하는 곳도 많았다. 나는 Guess에서 청바지 하나, 티셔츠 하나, Converse에서 신발 두 쌍과 티셔츠 하나를 사왔다. 가격은 Marshalls보다 저렴하다고 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브랜드 매장에서 품목과 크기가 다양한 것 중에 고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음편하게 들러서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좋은 것 같다. 나처럼 라스베가스에서 놀다가 캘리포니아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노린 위치에 있는 것이겠지. 위치도 네바다주에서 캘리포니아주를 넘어가기 직전의 경계.
15번 도로를 열심히 달려 로스엔젤레스로 돌아와서 집에 돌아온 시간은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이날도 아침일찍부터 12시간 넘게 혼자 운전을 해야 해서 정말 피곤했다. 오는 길은 어두운데다가 종종 막히기도 해서 많이 졸렸다. 음악을 크게 틀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왔다. 독한 민트도 한번에 두개씩 먹으면서 잠을 쫒으면서. 같이 여행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졸음을 쫒기 좋았을텐데.
자, 이렇게 2박 3일의 나홀로 데스밸리+라스베가스 여행을 마쳤다. 처음으로 하는 장거리/장시간 홀로 여행이었고, 처음으로 하는 자가 운전 여행이었다. 급하게 계획해서 떠난 여행치고는 나름 알차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황무지도 가보고 화려한 카지노도 가보고, 댐도 가보고. 혼자 운전해야 하는것도 힘들고 혼자 여행해야 하는것은 외로웠다. 혼자 여행의 장단점을 잘 파악했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일정을 다르게 잘 짜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 일정에 대한 것들 뿐만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것을 느끼고 배웠다. 우선 거대한 자연과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자연 경관들에게 놀라고, 70년 전에 세워진 거대한 댐에 놀라고. 또한 라스베가스라는 특이한 도시에서도 많은 것을 느꼈다. '엔터테인먼트'라는 보기 드문 목적으로 개발된 도시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죄악시 되는 '도박'이 도시의 주요 산업이 되고, 선정적인 광고판이 밤거리를 장식하고. 말그대로 이 '죄악의 도시'에서만은 죄악이 산업이고 놀이일 뿐이다. 이런 일에 대한 도덕적 잣대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은 아닌가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말이 길어졌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세줄요약:
늦잠자고 오후에 밸리오브파이어와 후버댐을 구경했어요.
돌아오는 길에 Primm의 아울렛에 들러 옷도 좀 샀어요.
늦게서야 집에 돌아왔는데 완전 피곤했지만, 참 보람찼어요 (초딩 일기모드).




덧글
박상용 2009/10/01 20:22 # 삭제 답글
영현아!! 너무 좋았겠구나! 언제 간거야? ㅋ
세라프 2009/10/02 03:01 #
이눔 제목에 날짜 있잖어 ㅎㅎ 9월 5일~7일 연휴에 다녀왔다오.너도 얼렁 미국 와라 같이 놀러 다니자 ㅎㅎㅎ
티엔스 2009/10/18 12:46 # 삭제 답글
오 라스베가스 갔었구나 ㅋㅋ 정말 미친듯이 덥던데-_-;;ㅋㅋ 그래도 또 가고싶다..
세라프 2009/10/18 14:41 #
라스베가스 갔었냐? ㅋ 나 갔을때도 엄청 더웠지만, 그래도 또 가고 싶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