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 강동원 / 송해성
[2006년 10월 1일 일요일. 나래와 함께 강남CINUS에서 관람]
영화를 좋아하는 나래와 함께 본 영화. 2주 전에 보자고 했었는데 서로 시간이 안 맞아서 이제야 보게 되었다.
동생은 작품의 원작을 소설로 읽었는데 구성도 밋밋하고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강동원과 이나영이라는 꽃미남 꽃미녀의 멜로물에서 특별한 감흥을 기대하지는 않았던 터라 큰 기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간만에 느끼는 가슴찡한 영화랄까. 슬픔을 억지로 불어 넣으려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눈물을 쥐어짜려고 하는 영화는 싫다. 무엇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였다.
한 여자가 사형수를 만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 시한부 인생이긴 하지만, 그것이 남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형'이라는 특이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진부한 소재를 벗어난 것 같았다. 또한 한달도 안되는 시간을 다루고 있어서 늘어지는 느낌도 없었다. 결론은 기대감을 낮추고 보아서 그런지는 모르나, 기대 이상의 작품,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더 이상 내려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영화의 평은, 영화가 던져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으로 써보려고 한다.
대학 이사장의 딸로 직업 걱정 없고 돈도 많은 문유정(이나영)은 살인죄로 사형을 언도 받은 정윤수(강동원)을, 반강제로 만나게 된다. 제 멋대로인 것 같은 유정이지만, 사실은 15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 당하고, 엄마에게 함구할 것을 강요받은 상처를 안고 있다. (1) 성폭력의 원인제공은 여성이 한다는 사회 인식이 드러난다. 가해자는 떳떳하지만 피해자는 자살을 시도할만큼 괴로워한다. '여자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되는 인식이 사회 퍼져있고, 피해자는 이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유정은 그런 엄마를 '죽기보다 어려운 용서'하면서 윤수의 사형집행이 기적적으로 막아지기를 바랄 정도로.
이 영화는 '용서'라는 키워드를 자주 던진다. (2) 용서는 어렵다. 성폭행 당한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엄마를 용서하기 어렵다. 자기 자식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도 어렵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는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뻔뻔한 자에게 반성을, 뉘우친 자에게 평온을 준다. 하지만 법의 집행에는 용서가 없었다.(3) 사형제도. 이 영화를 봤다면 피할 수 없는 논란이다. 사형제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사법제도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벌하고, 단죄하는 것이 정당한가. 내 생각에는 '정당'하다. 사회라는 권력이 스스로를 대표할 인간에게 이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이 정확하고 공평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같은 죄를 짓고도 다른 판결을 받기도 한고, 심지어는 죄에 대한 판단조차 정확하지 못하다. 영화 속이긴 하지만 윤수 또한 자기가 짓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 쓰고 사형판결을 받는다. 더불어 사형집행의 비인간성도 생각해볼만 하다...

결론. 재미있었다. 조조를 즐겨보기 때문에 밤에 영화 보는건 오랜만이었는데,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밤이라는 것도 괜찮았다.
덧: 이나영 이쁘다.




덧글
飛烏 2006/10/02 16:41 # 삭제 답글
마지막 덧에 한표 더[...]
자유 2006/10/03 10:14 # 답글
이나영 최고.
세라프 2006/10/04 00:54 # 답글
아웅 영화 내용에 집중하셈 내용에 ㅋㅋㅋ